"두산그룹 특검해라" 두산의 특혜성 BW에 얽힌 5대 의혹 금감원 조사 축소 의혹도 있어… 지난 해 10월 참여연대가 제기한 두산 그룹의 특혜성 BW 발행과 관련한 편법증여 의혹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존재하고 있다. 참여연대 측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2002년 11월 금감원에 조사 의뢰를 요청했고, 현재 공식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제기된 여러 의혹 중 해외발행을 가장한 국내 발행 혐의를 적발하고 이에 대한 재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조사를 일단락 하게 될 것으로 보여 금감원이 조사를 축소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발행을 가장한 위법 확실 99년7월 자금조달을 이유로 유로시장에서 해외공모발행으로 BW를 발행했던 두산 그룹은 이번 금감원의 조사로 해외발행을 가장한 국내발행 혐의가 적발되어 두산 그룹과 함께 당시 주간사를 맡았던 동양 종금에 대한 제재조치가 내려질 전망이다. 해외 BW를 발행할 경우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이 면제되는데, 해외 발행을 가장하였으므로 유가증권신고서 미제출 혐의와 관련된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나머지 4대 의혹은? 두산은 왜 해외공모발행을 가장하여 특혜성 BW를 발행하였을까? 편법증여 의혹이 제기되었을 시기
두산은 어떤 그룹인가? 두산중공업 노동자 분신 사태로 박용성 회장과 두산그룹에 관심 쏠려… 두산중공업 故 배달호 노동자의 분신자살로 노동계 및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어떠한 사람인가? 그는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IOC 위원 등 공식 직함만도 90여 개가 된다. 이 중 박회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신경을 쓰는 직책은 10여 가지이다. 박용성 회장에 대한 재계와 노동계의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재계의 소신파, 기업구조조정 전도사 등 집념과 뚝심을 겸비한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 반면, 이번 두산중공업 노동자의 분신 자살사태로 노동계에서는 그를 ‘악랄한 경영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두산 그룹의 뿌리가 ‘매판자본’이라는 창업주의 친일 행적에 관한 이야기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두산의 모태는 매판자본? 반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지난 93년 엮어낸 ‘친일파 99인’ 제2권의 경제인 명단에 두산 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朴承稷 창씨명 三木承稷 1864~1950)씨가 명기되어 있다. 책에는 박승직씨를 비롯하여 박용성 회장의 부친인 박두병씨까지 일제자본과의 ‘협력관계’를 친일의 과정으로 볼 것인지, 민족 자본의 길로 볼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벌써 두 번째 희생! 1997년 두산기계서 한 노동자 폭행치사, 분신 사건과 형태 다를 뿐 원인 유사 두산중공업 노동자 분신사건으로 두산기업의 반 노동자적인 태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두산기계(현 두산메카텍)에서 근무하다 해고당한 조태일(35) 씨는 두산의 노동자 탄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조씨가 근무했던 두산기계는 다물단을 이용해 노조를 무력화했다. 1997년에는 다물단원에 의해 노조사무국장을 역임했던 한 노동자가 집단폭행 당해 사망하기까지 했다. 이번 분신까지 두산에서만 벌써 두 명의 노동자가 희생된 것이다. 조씨는 이번 두산중공업 사태도 두산기계의 사례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사측의 힘없는 노조 만들기 주요 활동가와 노조 지도부에 대한 해고, 재산 가압류 등은 꼭 두산중공업의 상황이다. 폭행치사 당한 노동자는 상황이 그렇게 악화된 데다가 다물단 때문에 노동자들간의 반목이 커져 노조의 균열이 생겼다고 판단, 다물단 간부들에게 노조활동개입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다가 변을 당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의 분신과 두산기계 노동자의 폭행치사는 그 형태만 다를 뿐 원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두산기계측은 1995년부터 전체 노동자들을 대
그는 왜 분신했나? 노조탄압으로 자리 잡은 가압류와 손배소송 지난 1월 9일 새벽 배달호 (두산중공업 전 노조대의원, 50세)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공장 옆에서 분신했다. 회사의 노조탄압과 가압류 등이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할 자녀를 둔 중년의 가장이 분신을 결행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노동자들이 현재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나는 매일같이 고민을 해본다 두산의 노동조합 말살정책 분명히 드러나 있다” 배달호 씨가 남긴 유서 곳곳에서 그의 죽음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가 몸담고 있던 두산중공업은 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2000년 12월 한국중업업을 인수하며 탄생했다. 당시 두산의
"박용성 상의회장 사퇴하라” 두산제품 불매운동, 사회단체 성명 잇따라 “정말 정말 두산이 싫어집니다. 콩 팔고, 술 팔던 중소 기업이 한국중공업 인수해서 재벌 두산이 되어버린 지금, 해도 해도 너무한거 아닙니까?” “돈 되는거 다 팔아버리고 노동자는 손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두산재벌...(노동자 분신자살)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노동자 분신사건을 접한 네티즌의 호소다. 두산산중공업 故 배달호 씨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민주노총의 금속노조연맹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단체들까지 가세하면서 분신사망 사건이 올해 초 노사 협상의 흐름을 결정할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분신사망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권영길, 유덕상 이하 대책위)는 “두산중공업의 강압적 노무관리 행태에 대한 특별감사와 두산그룹 박회장의 사퇴, 재산과 봉급에 대한 가압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두산중공업을 힘의 논리를 동원해 노조를 무력화하고 백화점식 노조탄압을 가해온 대표적 사업장으로 지목하고, 지난해 회사쪽이 취한 대기업 사상 최초의 단체협약 일방해지에다 대규모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보여주듯 노조 와해를 노린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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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선택 2002 노무현 대통령 당선> ‘노 대통령을 만든 킹 메이커들’ 진정한 의미의 ‘킹 메이커’는 없어… 지난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도왔던 킹 메이커로 김원길, 한화갑, 김원기 의원을 들 수 있다. 김원기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당선자의 1등 공신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으나, 김원기, 한화갑 의원 등은 5년 전과 상황이 뒤바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16대 대선을 치르고 난 지금 분초를 다투며, 역사를 써내려 간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대통령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국가 원수의 카리스마를 형성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색다른 대선, 킹 메이커 ‘흐릿’ 이번 정권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킹 메이커’는 없지 않았는가’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한편에선 네티즌이 16대 대선의 킹 메이커라는 주장과 함께 민주당이나 특정 단체의 승리가 아닌 인터넷의 승리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인터넷이란 바로 ‘노사모’를 지칭하고 있다. 당초 투표율이 85% 이상은 돼야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70%를 겨우 넘는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은 ‘노사모
시사뉴스 <선택 2002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선자 ‘보다 빨리 보다 정확하게’ 첨단 개표기기 도입 개표시간 단축, 방송 3사 출구조사 예측 정확 16대 대선에서 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실시했던 여론출구조사 결과 가 실제 선거 결과와 거의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 3사는 선거일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동시에 발표한 여론출구조사 결과에서 일제히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1.5~2.3% 포인트 차로 따돌리고 당선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선거 결과 노 후보는 48.9%, 이 후보는 46.6%의 득표율을 보여 두 후보간 차이는 2.3%포인트였다. KBS(미디어리서치 조사)가 발표한 노 후보와 이 후보의 예상 득 표율은 각각 49.1%, 46.8%로 실제 득표율과는 불과 +0.2%포인트 씩 차이를 보여 방송 3사중 가장 근접한 수치를 예측했다. MBC(코리아리서치 조사)는 노 후보 48.4%, 이 후보 46.9%로 예측 , 실제 득표율과 각각 -0.5%, +0.3%포인트씩 차이를 보였다. 또 SBS(TN소프레스 조사)는 노 후보와 이 후보의 예상 득표율을 각 각 48.2%, 46.7%로 발표, 실제 득표율과는
시사뉴스 <선택 2002 노무현 대통령 당선> 동·서 분할 여전…세대간 대결 뚜렷 투표율 70.2% 역대 선거 최저 16대 대통령 선거에는 전국 총유권자 3천499만1천529명 중 2천477만0천906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개표결과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1천201만4천277표를 얻어 총 득표율 48.9%를 차지했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1천144만1천116표(46.6%)를 얻는데 그쳤다. 한편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9%의 득표율로 3위를 차지했고 이어 하나로 국민연합 이한동 후보가 0.3%, 호국당 김길수 후보 0.2%, 사회당 김영규 후보가 0.1%의 득표율을 보였다. 노 당선자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수도권과 충청·호남 등 10개 시·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율을 보여, 영남권과 강원도에서만 승리를 거둔 이회창 후보를 2.3%포인트(57만 여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盧-수도권 압승, 李-영남, 강원 체면치레 노 당선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체 유권자의 46.9%가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낡은정치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안정적으로 득표한 데 힘입었다. 노 당선자는 이 후보를 상대로
시사뉴스 <선택 2002 노무현 대통령 당선> 盧風에 실려온 희망 메시지 ‘개혁’ 낡은 정치 청산 국민정치참여 확대 계기 지난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이후 31년 만에 양강 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부패정권 심판과 정권교체를 내세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낡은정치 청산과 정치교체를 내세운 노후보가 대결한 결과 국민은 노후보를 선택했다. 특히 노 당선자가 50대 중반의 '젊은 지도자’라는 점에서 세대교체의 의미가 부각됐다. 또한 선거과정에서 지역대결 구도와 색깔시비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과거 대선과 비교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TV토론과 인터넷을 통한 효율적인 선거문화 정착 역시 큰 성과로 남았다. 낡은 정치 청산 민주당내 기반이 열악했던 노무현 후보의 경선 승리와 단일화 성공에 이은 대통령 당선은 그 동안 정치판에서 소외됐던 많은 유권자들이 얼마나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결과다. 원내의석 151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사회 주류를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고졸학력의 노무현 후보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사회 상류층에 의해 좌지우지 됐
시사뉴스 인수위 누가 참여하나? 인수위 참여 인사들 자연스럽게 새 정부 주요 직위 진출 대통령 선거가 끝남에 따라 정권인수위원회의 구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수위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전날인 2003년 2월25일까지 활동하며 차기 정권에 대한 정지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인수위원장에 정대철, 김원기 거론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1997년 당시에는 구제금융 위기 상황에서 구정권이 사실상 손을 놓아 당선자 진영이 새 정부 역할을 실질적으로 담당해야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노 당선자는 대선 직후인 12월26일 인수위를 구성했던 김 대통령과는 다르게, 서두르지 않으면서 인수위 인선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인수위를 구성할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 북미관계의 악화에 따른 남북관계의 긴장해소와 대미관계의 정상화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 대변인은 “인수위원은 25명 규모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누가 인수위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인수위에 참여하는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새 정부에서도 주요 직위에 진출함으로써 인수작업의 성과를 이어갔던 게
시사뉴스 빈농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 노무현 당선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풍운아’ 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그 한마디에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이 잘 축약되어 있다. 산골소년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는 진정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돌콩’이라 불린 아이 노무현 당선자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6일(음력) 경남 김해군 진영읍 봉화산 자락에서 빈농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노판석(76년 작고)씨와 어머니 이순례(98년 작고)씨는 척박한 땅을 일구며, 어렵게 살았다. 유난히 키가 작았던 탓에 ‘돌콩’이라 불렸지만 노무현은 제법 똑똑한 아이였다. 여섯 살 때 천자문을 줄줄 외웠고,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 시절 1등을 도맡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가난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거친 반항아였고, 자존심과 우월의식이 무척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 입학할 때의 일화는 어린 노무현을 잘 보여준다. 진영중학교에 시험을 치른 그는 입학금이 없었다. 친구로부터 “입학 때 책값만 내고, 봄 농사를 지어 갚기로 하고 입학허가를 받은 사람이 있다” 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와 함께 교감을 찾아갔다. 교감은 농사나 배
시사뉴스 ‘브리지’ 대통령 노무현 “마음과 마음,동과 서,남과 북을 이을 다리 역할을 할 사람” ‘원칙’과 ‘소신’이 마침내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 노무현’으로 만들었다. 그의 정치역정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특히 하이라이트는 지난 3월 국민경선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고스톱 용어로 ‘흔들고 쓰리고에 피박’을 당하고도 기적적으로 승리의 월계관이 그의 머리 위에 씌워졌다. 국민의 힘이었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21세기를 갈망하는 원군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빚쟁이 노무현 노무현 당선자는 빚쟁이다. 그 빚은 민주당에 대한 것도, 재벌에 대한 것도, 가신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거의 누구나가 빚을 진 그런 대상으로부터 자유롭다. 단지 국민에게만 빚졌다. 그는 광고와 유세를 통해서 항상 “대통령이 되면 국민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해왔다. 올 초까지만 해도 노 당선자는 대통령후보감도 못 됐다. 정치권에서는 “노무현은 경선용”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경선을 통해 당당히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됐다. 아무도 예상치 못 한 결과였다. 이인제 한화갑 김근태 정동영 등 당의 내로라하는 후